종수는 세상이 수수께끼 같다고 느낀다. 확신할 수 없는 일들만 일어나기 때문이다. 말이 없던 전화는 엄마였을수도 엄마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엄마와의 첫 통화는 생각보다 망설임이 없었고 밝았다. 해미가 빠졌었다던 우물은 존재했을수도 처음부터 없었을수도 있다. 다수가 우물같은건 없었다고 했지만 오랜만에 재회한 엄마는 우물이 분명히 있었다고 했다. 해미가 키운다는 고양이는 정말 있었는지 없었는지 조차 불분명하다. 벤이 갑자기 키운다던 고양이는 해미의 고양이일수도 아닐수도 있다.
벤이 집에 숨겨놓고 있던 시계는 해미의 것일 수도 있지만 흔한 사은품으로 받은 시계일수도 있다. 종수가 만났던 해미의 동료도 차고 있던 흔한 시계였다. 벤이 해미를 죽이지 않을 것일 수도 있다. 빚을 등지고 정말 어디론가 떠나버린 것일 수도 있다.
불분명한 것들이 가득한데도 종수는 벤이 해미를 죽였다고 확신한다. 종수와의 술자리에서 해미는 판토마임을 하며 귤을 먹고 싶어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가진 것 없고 불분명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판토마임처럼, 존재하지 않는 것을 망각하며 살아가는 것...